10/7 (화) 가을 운동회
저녁스케치
2014.10.07
조회 678
종이만국기 팔락팔락 줄에 걸린 학교 운동장
집단체조와 달음박질을 위해 그어진 횟가루 선은
백설탕처럼 반짝였고, 우리는 이날이 오기를
기다림의 눈깔사탕을 매일 빨고 녹였다
허술한 맞배지붕 형상의 광목 천막 아래는
어른들의 잔칫집, 그러나 우리에겐 야전사령부
하얀 모자에 호루라기 하나씩을 목에 건
선생님은 영락없는 야전 지휘관
그날은 내 바지춤에도 돌돌 감긴
십 원짜리 지폐가 내 자존을 한껏 치켜세웠고
청군이 이기면 큰일이나 날 것처럼
백군 이겨라 목이 다 쉬도록 소리쳤으며
뜻도 모를 '브이아이시티오알와이'를 외쳐댔다
김밥과 사이다로 대표되는 성찬
김밥으로 행복했던 위장을 사이다로 헹구었다
가장 먼저 배운 수준 높은 한자가
얇은 공책 표지에 파란 스탬프로 찍힌 "賞"이란 글자
몇 권 수중에 넣고 나면
세상 다 거머쥔 듯 의기는 양양했고
기를 쓰고 모래주머니로 터트린 달 바가지 속에는
우리들의 꿈들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권순진 시인의 <가을 운동회>란 글이었어요.
그러게요.
어릴 적, 가을 운동회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거 같으시죠.
엄마표 김밥에 사이다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고,
“상”자 찍힌 공책 몇 권에 하늘을 날 것처럼 뿌듯~했던
어릴 적 가을 운동회.
푸른 하늘 쨍하게 울리던 함성과
머루처럼 까만 눈동자들이, 오늘따라 참 그리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