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3 (수) 달팽이
저녁스케치
201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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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순이 푸른 이파리까지 가기 위해
하루에 몇 리를 가는지 보라
사과나무 꽃봉오리가 사과꽃으로
몸 바꾸기 위해 하루에
얼만큼씩 몸을 움직이는지 보라
속도가 속도의 논리로만 달려가는 세상에
꽃의 속도로 걸어가는 이 있다.
온몸의 혀로 대지를 천천히 핥으며
촉수를 뻗어 꽉 찬 허공 만지며
햇빛과 구름 모두 몸에 안고 가는 이
우리도 그처럼 카르마의 집 한채 지고
아침마다 문을 나선다.
등짐 때문에 하루가 휘청거리기도 하지만
짐에 기대 잠시 쉬기도 하고
이 짐 아니었으면 얼마나 허전할까 생각하면서
우리도 겨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아름다움도 기쁨도 벗어 버릴 수 없는
등짐의 무게 그 깊은 속에 있다는 걸
온 몸으로 보여주며
오늘도 달팽이는 평온한 속도로
제 생을 옮긴다.
도종환님의 <달팽이>란 글이었습니다.
저마다 걸음이 있고,
저마다 속도가 있는데,
그동안 우리 왜 그리 서둘러 왔나.. 싶어요.
꽃의 속도로 가는 달팽이를 닮고 싶습니다.
무거운 등짐이 실은,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이라는 걸 -
천천히 걸어보면 알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