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다디단 잠
저녁스케치
201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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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얼굴이 있다면 -
아마도 잠이 든 얼굴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꽁꽁 감싸던 모든 것에서 벗어나
무장해제가 되어 버린 모습은,
그 누구라도
평화롭고, 행복하고,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노인이나 아이나,
많이 가진 자나 적게 가진 자나,
누구에게나 하루 한번 씩 주어지는 공평의 축복인 잠.
그리고 그 중에서도, 유난히 다디단 잠이 있지요.

다디단 잠이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세상 걱정이라곤 하나 없이
양 팔을 벌린 채 나비잠을 자는 아기.
학교에 늦는다며,
깨우고 또 깨워도 쓰려져 빠져들던 잠.
여름날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드는 낮잠.
이부자리를 깔지 않고 옷도 벗지 않은 채 쓰러져 자는 잠.
맞다.
점심 먹고 난 다음, 엎드려 깜빡 드는 잠도, 참 달지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바쁨에 익숙해져서 그럴까요,
주름살만큼이나 걱정거리도 늘어서일까요.
어느새 다디단 잠은 오랜 기억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거기다 세상은 자는 시간도 아깝다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달려가라고 날을 세우기도 하지요.
이렇듯 잠의 축복을 잊어가는 사람들에게
피천득님의 글을 읽어드리고 싶어요.
“잠을 못 잔 사람에게는
풀의 향기도, 새소리도, 하늘도,
신선한 햇빛조차도 시들해지는 것이다.
잠을 희생하는 대가는 너무나 크다.
끼니를 한두 끼 굶고는 웃는 낯을 할 수 있으나,
잠을 하루 못 잤다면 찌푸릴 수밖에 없다.
눈같이 포근하고 안개같이 아늑한 잠,
잠은 괴로운 인생에게 보내온 아름다운 선물이다.
죽음이 긴 잠이라면 그것은 영원한 축복일 것이다.“

오늘 밤엔 일찍 잠자리에 들어보시죠.
뽀송뽀송한 새 이불에 가장 편한 베개를 꺼내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아쉽지만 안녕,
스마트폰도, 근심도, 내일 일도 잠시 꺼두시길.
그래요.
괴로운 인생에 보낸 가장 아름다운 선물은,
이제, 시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