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거닐다 - 쫓겨나는 여름
저녁스케치
2014.07.14
조회 868
보고, 즐기는 계절이 있다면 견뎌야 하는 계절이 있죠.
봄과 가을이 전자라면, 겨울과 여름은 단연 후자일 겁니다.
삼복도 시작되기 전에 혹독한 더위와 싸우고 있는 요즘,
‘견뎌야 하는 계절’..이란 말이 실감나죠.
하지만 언제부터일까요.
우린 여름을 ‘견디는’ 걸 넘어,
여름을 ‘쫓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요.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틀고,
차를 타도 에어컨에 손이 먼저 가고
조금 걷다 못 견디겠다.. 싶을 땐
어디든 문 하나만 열고 들어가면 시원한 딴 세상인 걸요.
거기다 사그락 사그락, 얼음 띄운 아이스커피 한 잔을 곁들이면
한 여름에 오소소.. 소름까지 돋는 걸요.
그렇게 여름은 쉽게, 거리로 쫓겨나고 있지요.
많은 사람들은
더위를 견딜 만 했던 과거와 달리
갈수록 독하고 난폭해지는 여름 탓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야박해진 여름만큼이나, 우리도 너무 야박해진 건 아닐까.
추억 속 여름들을 더듬어 봐도 그래요.
예전엔 집에 있지 못할 만큼 더워지면
정자나무 그늘 우거진 동네 평상으로 나오곤 했지요.
그 깊은 그늘 아래 쉬어가기도 하고.
그럼 또 누군가 수박 한 덩이 가져와 시원하게 나눠 먹고.
한 편에선 수런수런 수다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 한 숨 자고 가는 할머니들이 계시던 풍경.
밖에 있다 집에 들어가면 “덥지? 이리 와라”
엄마가 얼른 선풍기를 돌려주시던 기억은 또 어떻구요.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에 미지근한 바람이 전부였지만
더위를 식히기엔 충분했어요.
쏟아질 것 같은 여름 밤하늘을 이불 삼아
엄마 무릎 베고 잠들던 여름밤의 추억이며
오십원 어치 얼음을 사다 새끼줄에 달고
녹을 새라 더운 줄도 모르고 단숨에 달려오던 기억.
그땐 냉면 육수도 귀했죠.
그저 육수 가루 휘휘 저어 얼음 동동 띄워주는
엄마표 냉면 한 그릇이면, 더위 쯤은 끄떡없었지요.
그러게요. 그땐 여름과 함께 갈만 했는데...
음식칼럼니스트인 박찬일씨는
쫒겨난 오늘날의 여름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우리집 냉장고는 얼음이 없다.
무더운 밤을 달래주던 돗자리도 없다.
탈탈거리며 돌아가던 금성사 선풍기도 없다.
여름은 냉방에 밀려 거리로 쫓겨났다.
다들 얼음처럼 차가운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먼 눈으로 거리의 여름을 볼 뿐이다.“
그렇게 우린 여름 없는 여름을 보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