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5 (금) 할머니와 문학
저녁스케치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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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게 남은 할머니의 목소리 중에
제일 오래된 것은
일테면 매우 문학적이었다
맑은 날도 그렇지만 특히 비 오는 날
사방이 어두워지는 저물녘이면
할머니가 말하곤 했다
-벌써 어둡구나, 아니고, 저릿해.
저릿하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때는 정확히 몰랐지만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며 문학책을
한창 많이 읽던 때라서였을까?
“어둡다”와 “저릿하다” 사이의 연관성이
어쩐지 퍽 문학적이라는,
그런 알쏭달쏭한 생각을 했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비 오는 날 어두워질 무렵이면
가끔 할머니 생각이 난다
저릿하게 어두운 하루의
어떤 무릎을 지나
아침은 오는 거겠지, 싶은 마음이 든다
김선우 시인의 <할머니와 문학>
해거름 무렵이면 저릿해져 온다던 어른들의 말,
저릿한 것이 무릎인지, 한 많은 세월이었는지,
어딘가에서 잃은 마음인지, 늘 아리송했었는데,
이젠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슬퍼도, 기뻐도 눈물이 나는 것처럼
세상을 알면 알수록 모든 순간 가슴이 저려온다는 걸.
다름 아닌 삶이 저릿하단 말이었다는 걸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