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23 (토) 밥이나 제대로 먹고 댕기냐
저녁스케치
2023.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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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제대로 먹고 댕기냐?’
내가 집에 들어섰다 하면 어머니는,
대답 따위는 기다릴 것 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빵이나 떡은 군것질일 뿐,
끼니만은 밥이라고 고집하였다

어머니, 성산동에 살던 때가 생각납니다
모래내 시장에서 김칫거리를 사들고서 걸어오던 일
걷다가 쉬고 쉬다가 걸으며 어머니를 부려 기운 빼던 일
철로를 건너 골목 끝에 대영약국이 있지요, 거기까지면 다 온 거지요
지금은 거기도 마을버스가 생겼겠지만
택시는 언감생심 타지 못하던
그때가 지금에야 사무칩니다

돌절구에 고추 갈고 마늘을 찧어
풋김치 색깔 곱게 버무리던 어머니
밥이 보약이니라, 입맛 좋을 때 먹어라
사시사철 밥걱정에 편할 틈이 없더니
밥은 어머니의 오지랖, 어머니의 진리, 어머니의 사서삼경,
어머니의 규율, 어머니의 성경말씀, 어머니의 유언
어머니, 저도
자식들 밥걱정에 동당거리며 삽니다
밥은 먹었니? 더 먹으렴
유전하는 노래하나 뼛속에 익혀
아침저녁 힘을 주어 불러댑니다
밥 먹어라, 밥 먹어라 외쳐댑니다
어머니가 제 안에서 걱정하는 겁니다

이향아 시인의 <밥이나 제대로 먹고 댕기냐>


안부 전화를 하면,
가장 먼저 “밥은 먹었어?”하고 묻던 엄마.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늘 대수롭잖게 여겼지만,
힘들 때나 슬플 때나, 지금껏 그 밥심으로 살지요.
지친 마음을 토닥여 주던 엄마의 밥상,
밥으로 전한 엄마의 깊은 사랑이 고픈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