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19 (토) 나는 조각배
저녁스케치
20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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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놉니다.
노니, 좋습니다.
아파트 정원에 산딸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희고 고운 꽃잎들이 초록의 나뭇잎 위에
십자 모양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피었습니다.
초여름꽃은 흰 꽃들이 많답니다. 이팝나무 꽃, 층층나무 꽃,
때죽나무 꽃, 때죽나무 꽃은 대롱대롱 매달려 피지요.
꽃술 끝이 노란 그 꽃들도 희고 곱답니다. 꽃이 질 때
그것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면
내 몸에 실린 짐들을 하나둘 몸 밖으로 던지는 꿈을 꿉니다.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으면 눈이 저절로 감깁니다.
눈이 감기면 내 몸은 빈 배가 되어
어느 먼 곳으로 기우뚱기우뚱 떠갑니다.
한없이, 한이 없이, 좋습니다. 순순한 바다,
먼 수평선 너머로 나는 나를 놓고 깜박 꺼져서.
그래요.
그렇게 당신의 흰 발꿈치에 가만히 가닿고 싶은
나는
한 조각
빈 배지요.
김용택 시인의 <나는 조각배>
평생 아등바등,
여유라고는 모르고 살았으니
시간이 넉넉하다 한들 쉽게 바뀔 리 없겠지요.
그래설까요.
이따금 여생의 항로가 정해진 배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합니다.
그 무엇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마음을 비우고 오르면
세상 구경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며 유유히 떠다니다,
마지막엔 가장 그리운 이 앞에 멈춰서는
그런 작은 조각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