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4 (금) 숫자를 세다
저녁스케치
202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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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를 세는 것은 내 오래된 버릇
술잔을 세고 계단을 세고 날짜를 센다
숫자를 세는 것은 숫자놀음이 아니다
분을 내리고 나를 내리는 또다른 방법이다
이것이 숫자를 세는 나의 변증법이다
숫자를 세다 보면
술잔을 내려놓듯 계단을 내려가듯
마음도 따라 내려간다
내가 대학생이던 60년대
아버지는 내게 60년대식으로 말씀하셨다
화가 날 땐 하나에서 열까지 세고
더 화날 땐 백까지 세어봐라
그러면 불같은 화도 내릴 것이니
참는 것이란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그때 불과 얼음을 생각했다
그때부터 생긴 숫자를 세는 버릇
세상을 참는 방법이 되었다
오늘도 숫자를 세면서 생각한다
아버지의 방법에 비하면
내 버릇은 얼마나 사소한가

천양희 시인의 <숫자를 세다>


화가 날 땐 숫자를 세어 보세요.
물론 숫자를 센다고 화가 사라지진 않아요.
하지만 끝없이 숫자를 세다 보면,
단단하게 굳은 마음의 문이 스르륵 열리고
험상궂은 얼굴에도 미소가 돌기 시작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