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15 (화) 물외냉국
저녁스케치
20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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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에서는 오이를
물외라 불렀다
금방 펌프질한 물을
양동이 속에 퍼부어주면 물외는
좋아서 저희끼리 물 위에 올라앉아
새끼오리처럼 동동거렸다
그때 물외의 팔뚝에
소름이 오슬오슬 돋는 것을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물외는 펌프 주둥이로 빠져나오는
통통한 물줄기를 잘라서
양동이에 띄워놓은 것 같았다
물줄기의 둥근 도막을
반으로 뚝 꺾어 젊은 외삼촌이
우적우적 씹어먹는 동안
도닥도닥 외할머니는 저무는
부엌에서 물외채를 쳤다
햇살이 싸리울 그림자를
마당에 펼치고 있었고
물외냉국 냄새가
평상까지 올라왔다
안도현 시인의 <물외냉국>
종일 땀 뻘뻘 흘리고 들어와
오이냉국에 밥 한 그릇 뚝딱하고선,
평상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더위도 여름의 낭만으로 느껴지곤 했었죠.
지금은 ‘세상에 이렇게 더운데 낭만은 무슨~’하지만,
머잖아 ‘어머머~ 무슨 냉국이야~’ 하는 가을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