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15 (목) 오래된 테이프
저녁스케치
2023.06.15
조회 556

지난 사랑은 비디오나 카세트처럼 미세한 모터 소리를 낸다. 지루할 때는 앞이나 뒤로 재빠르게 넘긴다.

우리는 테이프를 꺼내 녹화를 뜬다. 우리의 과거는 십 쎈티만큼의 미래에 둥글게 말리고 있다.

그러니까 어느 골목에서 갑자기 과거의 사랑이 재생되더라도 놀라면 안 된다. 우리는 그저 먹먹해지면 되니까.

과거와 미래는 뒤바뀐 기억이다. 지금 사랑하면서 우리가 예전에 지나온 어느 골목을 떠올리는 건 죄다.

우리는 한 곡만 반복해서 들었고, 한 장면만 반복해서 보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열대야처럼 늘어진다.

사랑이 저기 있는데, 리모컨을 쥐고 소파에 누워서 우리가 겨우 할 수 있는 건, 꾸벅꾸벅 조는 일뿐이다.

목소리는 변하고 얼굴은 일그러진다. 필름을 뽑아내기까지, 우리는 적당히 늙어간다.

백상웅 시인의 <오래된 테이프>


예전엔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를
테이프가 늘어지게 보고 또 보았었지요.
지나고 보니 추억도 그런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늘어지고 엉켜 제대로 된 기억도 아닌데,
그냥 흘러가게 두지 못해 끝없이 소환하니 말이죠.
하지만 언제부턴가 곳곳이 뚝뚝 끊어지더니
선명하던 기억에도 안개가 드리워졌습니다.
이젠 추억도 조금씩, 조금씩 나이가 드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