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16 (금) 하루의 끝
저녁스케치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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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깊고 전철은 오지 않는다
벽에 기대어 흐린 눈을 감았다 뜬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하루여
너는 어디쯤 서서 남은 시간을 기다리는가
말 못할 하루를 나는 살았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았으나
꽃잎 한 장 펴보지 못하고 나는 오늘도 입다무는구나
갑자기 맑은 웃음소리 들렸다
사내 둘과 여자애 하나
내 앞에서 수화로 부지런히 말을 주고받는다
오 즐거운 일이 있었을까 황홀한 사건이 벌어졌을까
그렇게 기쁜 표정을 본 적이 없다
반쯤 뜬 눈 조금 더 열고 보니
선로 건너편의 청년도 이쪽을 향해
두 손으로 신나게 웃으며 마구 말을 건네온다
그토록 기쁨에 넘치는 얼굴들이 열심으로
열심으로 하루의 끝을 울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박해석 시인의 <하루의 끝>


걸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은 퇴근길.

나보다 땀을 한 바가지는 더 흘렸을지도 모를,
나보다 더 일진이 사나웠을지도 모를 사람들이
힘찬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갑니다.

저런 힘이 어디서 나는 걸까 생각하다,
힘이 어딨겠어, 살려고 그러는 거지.

멋대로 결론을 내리고는
그래, 살다 보면 오늘 같은 날도 있는 거라고,
내일은 분명 다를 거라며 마음을 다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