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23 (금) 그런 저녁이 있다
저녁스케치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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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며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비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나희덕 시인의 <그런 저녁이 있다>


풍경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세상은 언제나 유유히 흘러가는데
나만 길을 잃고 헤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어디에도 맘 둘 곳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렇게,
저녁놀 속에 맴돌 때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