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20 (토) 행복을 먹는 아이들
저녁스케치
2023.05.20
조회 473

처마 끝 그림자가 댓돌 너머 저만치
마당으로 물러나면
초여름 대청마루는 분주해진다.

엄마는 밭에서 캐온 감자를 골라
껍질을 깎고 강판에 감자를 간다
강판에 흐르는 감자즙을 바라보는
아이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요동을 친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가마솥 떡 시루에
까맣게 윤기가 흐르는 감자떡이
팥고물로 곱게 단장하고 얼굴을 내밀면

엄마는
대나무 잣대를 떡시루에 올려놓고
시퍼렇게 날이 선 부엌칼로
잣대를 따라 후후
김을 불어내며 떡을 자른다

보릿고개 넘는 배고픈 아이들의
허기진 배 채워주는 감자떡
아이들은 엄마의 땀을 먹고 눈물을 먹고
온 가족 둘러앉아 행복을 먹는다.

김정윤 시인의 <행복을 먹는 아이들>


예전엔 팍팍한 살림에 아이들을 먹이려면
엄마는 늘 요술쟁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비록 푸성귀로 만든 전이며 떡일 뿐이었지만
엄마는 사랑이란 조미료를 아끼지 않고 넣어
행복이란 이름의 특식을 만들어냈죠.

저녁이면 오순도순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행복을 나누던 그때가 참 좋았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