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31 (수) 행복에 대한 저항시
저녁스케치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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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을 계산하고 노후를 설계하고
새로 나온 보험을 좇아다니다가
봄날이 다 지나갔다
아파트 한채를 장만하고 차 한대를 갖고
여행상품을 검색하는 동안

명품을 간파하는 눈이 생겼는데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고
배신 타령을 한다
와인맛 커피맛을 하는 혀
좋은 브랜드 옷의 감촉은 좋아하면서도
정작 네 살갗에는 무덤덤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주말이면 쇼핑과 외식으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다
여행을 가도 남는 건 사진밖에 없더라 법석을 떨면서
폭식하듯 사진을 찍는다

뼈 빠지게 사노라 살지 못했는가
죽는 것은 습관이 아닌데 사는 것은 습관이 되어서
행복이여, 어쩌다 나는 행복에 대한 저항시를 쓴다
행복을 위해서도 저항시를 위해서도 이건 참 서글픈 일이다

손택수 시인의 <행복에 대한 저항시>


이번에 차 바꾼대,
투자 대박이래,
또 여행을 간다네.

누군가의 행복 퍼레이드를 보고 있으면,
나는 과연 행복을 위해 뭘 하고 있나 싶습니다.

근데, 알잖아요.
참 행복은 물질과 크기에 있지 않단 거.

무탈한 하루를 보낸 후 맛있는 저녁을 먹고
두 다리 쭉 뻗고 잠자리에 들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 아닐까요.

다른 사람의 행복과 저울질하느라
일상의 소박한 행복들에 저항하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