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 6 (화)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저녁스케치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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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 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나가 좋을 거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를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안도현 시인의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퇴근하는 아버지가
고기 좀 끊어왔다 그러면
안방엔 어린 동생들의
재롱잔치가 벌어졌고
새침한 사춘기 누이도
슬며시 문지방을 넘어왔어요.
아주 잠깐이지만
어머니의 주름진 미간도 펴졌었죠.
그렇게 기름진 고기 한 점
밥 위에 올려 나누다 보면
서로에게 준 상처도 금세 아물고
마음은 반질반질 윤이 나곤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