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12 (수) 국수
저녁스케치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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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동그랗고 부드러워
가난한 입맛에 착 착 달라붙고
붙잡는 사람 하나 없는 아리랑 고개처럼
쏙 쏙 목구멍을 넘어가면
초승달처럼 꺼졌던 배가 보름달처럼 부풀어 올라
주름진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나는데
기실은 국수로 못되어 국시로나 불리고
국시도 못되어 국시꼬랭이로나 떨어져 나와
한 숟가락도 안 되는 수제비로 끝나려는지
솥뚜껑 위에서 구워져 아이들 군것질로 끝나려는지
삶이 잔치가 맞기는 맞는지
내 몸은 또 얼마나 희고 동그랗고 부드러운지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희멀건한 생각을 해 보는데
그래도 뜨끈뜨끈한 것이 들어가니 뱃속은 든든하였다
그러면 되었지 싶었다

양광모 시인의 <국수>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금세 허기지는 국수.
길지만 힘없이 뚝뚝 끊어지는 것이
헛헛한 우리네 삶과 어찌 그리도 닮았는지.
하지만 국물까지 싹 비우고 나면 제법 든든한 게
따뜻해진 몸으로 다시 길을 나설 수 있지요.
잠깐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잔칫날로 만드는 국수.
그래, 잔치가 별거 있나, 행복한 그 순간이 잔치지.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그것으로 되었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