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17 (금) 시래기를 삶으며
저녁스케치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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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김장을 하면서
남은 채소들을 모아 엮어
아파트 베란다에 매달았다.

시래기 타래들이 20층
허공에 있는 것이 신기해선지
겨울 햇살도 씨익 웃다 가고
바람도 장난꾸러기처럼
그 몸체를 마구 뒤흔들었다.

오늘은 고요히 눈이 내리고
왠지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 주던
시래깃국 생각이 간절하여
배추잎, 무청들을
푹 삶아서 푸르게 살아난
잎새들의 겉껍질을 벗긴다.

겨울 해는 내 인생처럼
짧기만 한데

나이 들수록 돌아가고픈
옛날이 있다.

강우식 시인의 <시래기를 삶으며>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졌다는 건
그리움 나무에 결실을 맺을 때가 됐다는 것.
그래서 밥을 먹다 어머니가 생각나 울컥하고
사진 앨범을 들여다보고 싶은 날이 많아지고
꿈에선 자꾸만 어린 날들이 스칩니다.
저 많은 그리움을 어찌할까 고민인데
속도 모르고 그리움 열매는
하나씩 하나씩 늘어만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