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25 (토) 옷
저녁스케치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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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나를 입고 외출을 한다
옷은 길거리에 사람들을 스캔하며
떨어지는 단풍을 바라볼 겨를도 없이
쇼핑몰에 들어가 새로운 옷을 사들인다
옷은 타인에게 비칠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며
안심시켜 줄 그 순간을 찾는다
어떤 사람에게 옷은 육체의 피난처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욕망의 승화이다
그들에게 옷은 신분의 상징물이며
자기 존재의 증명서이다
옷은 날마다 자신의 옷차림을 바꾸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려 준다
밤 깊어 옷이 나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도 옷장 속엔 버리지 못할 옷 하나 남아있다
이젠 드라이클리닝도 먹지 않는 가죽 재킷
접어 입던 소매엔 깎을 수 없는 굳은살이
단단히 박혀있다
이재봉 시인의 <옷>
겉모습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외모나 꾸민 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현실을 보면
사람이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입는다는 표현이
씁쓸하지만 아예 틀린 말도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나는 나. 어떤 자리에 있든, 무슨 옷을 입든,
나다움만큼은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