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27 (화) 추억의 하얀 발자국
저녁스케치
2022.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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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눈이 내린 하얀 설원 위에서
옛 추억하나를 끄집어 내
첫 발자국을 안깁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사연
뽀드득뽀드득 눈에 밝힐까
두려운 마음뿐이라도 결국
다 쓸모없는 것들이라 여겼는데

언덕 위를 힘겹게 턱걸이하고 보니
없으면 못 살 것 같고 혼자서
못 갈 것 같은 그런 세월이
숲을 이르렀다

낡은 흑백 영사기가 덜거덕
거리며 돌아가듯 수없이 재생하고픈
봄날 소풍 같은 그런 순간들이
아름아름 펼쳐집니다

잠시 망각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잊고 살 수 없는 한 컷 한 컷
들이 퍼즐처럼 제자리를 찾아가고
마지막 한 조각 뚝 하고 떨어지는
그리움

최영복 시인의 <추억의 하얀 발자국>


잊어야 한다고,
지난 일은 모두 떨쳐버려야
내일을 살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요.

고통스런 순간마다
마음테가 하나씩 늘었고
힘겨울 때마다 함께 걸어 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는 걸요.

시린 겨울 같은 인생,
그 위에 꾹꾹 발자욱을 남겨봅니다.
얼어붙은 발자욱이 사라질 즈음엔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인생의 봄날을
걷고 있길 바라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