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5 (월)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저녁스케치
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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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넓은 운동장인가
크기를 잴 수도 숫자를 헤아릴 수도 없는
우리가 별이라고 부르는
둥근 공들이 떠다니는 지구는,
그 안에 좁쌀보다도 작은 지구를
나는 너무도 힘들게 발로 굴리며
날마다 동동거리며 산다
알고 보면 나는 공(球)에서 나서
공(空)으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는데
때리거나 던지거나 차거나
공을 다루는 재주가 아예 없는 내가
0이 두 개 붙은 2002년 6월
느닷없이 사람들에 치이며
광화문 거리를 비집고 들어가
대애 안∼미 인구 욱!
엇박자 손뼉을 치고 고함을 질러댔다
월드컵 4강, 독일과 한 판 붙을 때는
운 좋게 상암구장 목 좋은 자리에서
머리 흰 붉은 악마가 되어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돼지 오줌깨나 새끼줄 뭉치를 차던 날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우리 젊은이들이 겁도 없이
월드컵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이제 두 달도 안 남은 6월을 기다리게 됐고
다시 한 번 거리에 나가
악마들과 손뼉을 치며 발을 굴리고 싶은 것이다.
날개가 없이도 잘도 나는
바람둥이 공을 두고
헛발질도 못하는 내가.

이근배 시인의 <날개가 없어도 공은 난다>


축구를 잘 몰라도, 공을 차보지도 않았던 사람도
‘대~한 민국!’을 외치며 한 마음이 되는 월드컵.
공 굴리는 재주도 없고, 자잘한 규칙은 모르지만,
공처럼 둥글둥글한 마음에다 희망이라는 날개를 달고
오늘도 열두 번째 전사가 되어 그라운드를 날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