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24 (월) 천천히 가기
저녁스케치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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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겨울이라 하기 이른 가을입니다
벌써 오싹함을 느끼는 건 엄살일까요

지천명 넘어 돌아보니
무엇이든 급히 주워 삼키던 지난날
이제 좀 천천히 가야겠습니다

해마다 꽃 피우고
가지마다 한가득 녹음 품고 살다가
야위어 앙상해지는 나무
살아 있는 윤회 닮을 수 없으나
이 가을 비늘 같은 각질 털어내며
밀려오는 쓸쓸함 꼭꼭 씹습니다

다 이해하고 다 알 수 없는 삶
빨리 간다고 하여 꼭 먼저 당도하지 않는 법

기어이 얻으려던 답안 미뤄 두고
한편 시
한 폭 그림
한 소절 노래 감상하듯
눈 귀 마음의 강으로
흘러가는 상처 무심히 바라봅니다

끝 간 데 어디 건 흐르다
한적한 어느 골 마음 빼앗겨 몸 부리면
그곳이 내 집입니다

세월보다 늦게 가더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슬픔도 친구가 됩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아픔도 스승이 됩니다

안미숙 시인의 <천천히 가기>


앞이 보이지 않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을 땐
인생의 속도를 조금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천천히 서두르란 말이 있어요.
모순된 이 말의 의미는
삶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지되,
딱 맞는 타이밍에 행동하란 의미죠.

세월은 멈춰 설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흘러갑니다.
그러니 언제나 천천히 서두를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