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23 (금) 뜨거운 편지
저녁스케치
2022.09.23
조회 608

그대에게 편지를 씁니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그대 마음 얻을까, 고민하다가
연습장 한 권을 다 써버렸습니다
이렇게 침이 마르도록
고된 작업은 처음입니다
내 크나큰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글이란 것이 턱없이 못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부엌에서
보리차가 끓고 있습니다
보리차가 주전자 뚜껑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문틈으로 들어 온
보리차 냄새가 편지지 위에서
만년필을 흔들어 댑니다

사랑합니다, 란 글자
결국 이 한 글자 쓰려고
보리차는 뜨거움을 참았나 봅니다

김현태 시인의 <뜨거운 편지>


좋은 글귀도 찾아 놓고,
마음을 대신할 노랫말도 적어 놓고,
색색의 펜과 예쁜 편지지도 준비해 놓고선,
막상 펜을 들면 머릿속이 백짓장이 되곤 했죠.
첫 문장을 채 완성하지 못하고
구겨버린 편지지는 또 얼마나 많았는지.
결국 마음을 전하지도 못하고 열병을 앓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런 바보도 없었다 싶습니다.
사랑한단 말... 그 말 한마디면 되었는데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