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9 (월) 포도밭에서
저녁스케치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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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선 무던한 마음씨
참고 견디는 일꾼이어야 한다
일손을 놓고
이마의 땀을 닦는 그늘에서
가을을 꿈꾸는 일꾼이어야 한다
달콤한 낮잠을 생각하고
새콤한 포도알이
주렁주렁 매달린 꿈
태풍이 올 듯,
작열하던 태양이 무너지는
엄청난 소용돌이를 지켜보아야 한다
여름은 격정의 계절
먼바다로 떠나간 뱃사람들은
한번 떠나면 그만
포도밭에선 소문이 끊인다
그들은 뭉게구름과 갈매기와
저 아득한 수평선을 경계로
내륙의 안부를 묻는다
우박 같은 소나기에
포도밭은 아우성이다
긴 낮잠에서 깨어난 덩굴손이
바다를 향해 일어선다
막막한 나라
한 점 그림같이 떠 있는 배
희미한 그리움
흔들리는 외로움이 떠 있다
가지 치던 손으로
하얀 수건을 흔들어 보인다
아 나는 항복한다
무조건 항복이다
무성히 뻗어나던 덩굴손
이 여름을 거머잡고
먼 먼바다를 향해
귀를 기울인다
보다 실한 열매를 기원하며
어디쯤 가을이 오는지
귀를 기울인다
박이도 시인의 <포도밭에서 3>
오는 가을을 가로막고 선 여름이 참 야속합니다.
근데 여름이 버티는 건 몽니를 부리는 게 아니라,
갖은 열매들을 더 달고 풍성히 영글게 해달라는
가을의 부탁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여름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제 할 일을 끝낼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기로 해요.
우리에겐 가을이 보낸 귀뚜라미의 노랫소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