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 가는 나뭇잎들은
이미 알싸한 냄새를 풍기고
밀밭은 수확이 끝나 텅 비었다
조만간 비바람 한 번 들이치면
우리의 고단한 여름도 꺾이겠지
금작화 깍지들이 바스락거린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다고 여기는 모든 것이
아스라이 먼 옛이야기처럼 보이고
꽃들은 모두 길을 잃고 헤맨다
놀란 마음속에 소망이 자라난다
너무 사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듦을 나무처럼 자연스레 겪어내면 좋겠다
가을에도 축제와 다채로운 빛깔이 있으면 좋겠다
헤르만 헤세의 <일찍 찾아온 가을>
여전히 공기는 뜨겁고
들녘엔 청록 물결이 넘실대지만,
하루하루 해는 짧아지고 있고
당당하던 초록 잎의 기세도 조금은 꺾였습니다.
떠나기 싫은 여름의 몸부림에
아직 가을은 저 멀리서 바라만 볼 뿐이지만,
두 계절 모두 시간을 거스를 순 없겠지요.
그 시간을 따라 이 계절도,
우리의 고단함도 물 흐르듯 지나가길,
단풍처럼 삶이 곱게 물들길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