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11 (월) 일 인치만 줄여 주세요
저녁스케치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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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인치만 줄여주세요
허리가 큰 이월상품 바지 하나를 싸게 사서
수선을 맡기고 골목에서 기다렸네

큰 옷만 사 주던 어릴 적
엄마는 옷 크다고 투덜대면
검정 고무줄을 허리춤에 꿰어
고무바지를 만들어 주었지
무릎이 해지면 비슷한 색 천으로 덧대어 주었지

밑단은 안으로 말아 넣어 꿰맸다가
다음해에 풀어 주었지
일 인치만 줄여주세요
이제는 꿰맨 바짓단 풀 일이 없네
자꾸자꾸 줄 일만 남았네

아부지도 죽기 전에는 나보다 작아졌었지
겨울로 가는 해도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드륵 드르륵 수선공 미싱 소리
그림자 긴 골목길을 줄이고 있네

피재현 시인의 <일 인치만 줄여 주세요>


자라는 내내 내 옷일랑 없이
팔꿈치며 무릎이며 늘 덧댄 옷가지들,
줄였다 늘인 티 나는 바지 밑단에 창피했던 어린 날,

맞지 않아도 새 옷 사주던 아버지,
딱 맞게 뚝딱 고쳐주던 어머니,
티격태격해도 옷을 물려주고
물려받을 수 있는 형제자매들,
모두 복닥거리며 살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