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13 (수) 진추하, 라디오의 나날
저녁스케치
202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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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커트한 뒷머리, 능금빛 얼굴의
여학생에게 편지를 썼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신청곡은 졸업의 눈물, 사랑의 스잔나 진추하가
홍콩의 밤 열기를 담은 목청으로 내 마음을 전했다
그 여학생은 내게 능금빛 미소만을 쥐어주고
달아났다, 금성 트랜지스터 라디오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날들, 폴 모리아
질리오라 친케티, 사이몬 & 가펑클, 모리스 앨버트
그리고 한 순간 수줍게 라디오를 스쳐가던 그녀
그와 함께 진추하를 듣고 싶어요, 그 작은
라디오의 나라 가득히 드넓은 한여름 밤과
무수한 잔별들이 두근두근 흘러들어오고 난
그녀의 흩날리는 단발머리를 따라 새벽녘의 샛별까지……
그렇게, 열다섯 살의 떨림 속에 살던 나와 그녀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건전지처럼 업혀 있던 그 풋사랑의 70년대도,
퇴락한 진추하의 노래를 따라
붉은 노을의 어디쯤을 걸어가고 있으리

유하 시인의 <진추하, 라디오의 나날>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이야기에
‘어머 내 얘기네~’하며 깔깔 대다가도,
가슴을 적시는 추억의 노래 한 곡에
금세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옵니다.

늘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힘이 들면 토닥여주는 벗들이 있는 공간.

그래서 우린, 오늘도 라디오를 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