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25 (목) 카드 내역서
저녁스케치
202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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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치 내 삶은 쳇바퀴나 돌리는 일
월말이면 으례껏 또 나를 따라와서
증거를 들이밀면서 이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래도 살아있어 받을 수 있는 것을
막내딸 학원비와 남편의 종합 검진비
간만에 여고 동창회 내지른 밥값까지

언제나 예외는 있어, 오일장 티셔츠 한 장
냉장고 검은 봉지 그 안에나 담겨서
내 몸의 비밀번호를 끝까지 대라하네

카드 휙 긁어대듯 별똥별이 지는 밤
저마다의 별빛들 저마다의 내역을 안고
결제 일 한 바퀴 돌고 또 섬으로 앉는다

송인영 시인의 <카드 내역서>


올 봄엔 외투 하나 장만할까 싶었는데,
빼곡한 카드 내역서를 보고는
‘그래 봄은 짧잖아.
며칠 입지도 못할 텐데 뭘.’ 하며
눈을 질끈 감습니다.
다음 달에도, 다음 계절에도 이러겠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
한 번 더 먹일 생각에 미소가 절로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