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세 포기 절이려고
소금 항아리 열고 망설이다
전화기를 든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자
신호 한번 가지 않고 들리는 말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낯선 목소리에
가슴이 덜컹 힘이 빠진다
뜨거운 덩어리가 울컥 올라온다

큰언니의 번호를 눌러본다
소금 몇 공기 퍼야 하는지 모른다고 울먹이자
이 바보야, 네 나이가 몇인데
말끝을 흐린다

내 요리책이었던 엄마
음식 만들다 말고 전화기만 들면
몇십 년 한결같이
초판 내용을 유지했었다

몇 번을 물어도 반갑게 말해주던
엄마 음성 그리워
배추를 절이다 말고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는다

눈물로 푹 절여진 얼굴
간이 밴 표정이 엄마를 닮았다

신수옥 시인의 <사라진 요리책>

요리 레시피가 헷갈리면
주저 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죠.
그러다 문득 무거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전화를 걸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면 그때는 어쩌나...
이 불안한 생각이 현실이 되면
그때 나는 어쩌나...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