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크게 한판 싸우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빨래를 한다
이것저것 분간 없이 한목에 넣고 돌렸다
탈수를 한 빨래를 끌어올리니
셔츠와 바지와 수건이
지들끼리 엉겨 붙어 난리다
꼬인 팔과 다리를 다시 풀어내는데
잘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
당신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다
삶은 본래부터 엉키게 되어 있는 것
엉킨 빨래 풀어 널 듯 나를 너는 사람아,
나는 여기에 죄를 말리러 왔다
당신 앞의 볕이 참 깨끗하였다
김수상 시인의 <빨래>
서로 다른 빨래들이
세탁기 통 안에서 쉬지 않고 돌아가는 게
사람 사는 모습 같아요. 부부가 사는 모습 같기도 하구요.
가족들 밥 챙기고, 출근하고, 아이 돌보고, 집 치우고,
그렇게 각자가 쉬지 않고 움직이는데
부딪히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죠.
세탁기에서 막 꺼낸 빨래도,
우리 삶도 엉키게 돼있습니다.
그렇게 설계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니,
우리는 그저 엉킨 빨래를 잘 풀어볼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