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웠어, 너의 껍질
깨뜨려야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심이 있다는 거
나는 너무 무른 사람이라서
툭하면 주저앉기부터 하는데
너는 언제나 단호하고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한손에 담길 만큼 작지만
우주를 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너의 시간은 어떤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어떤 위로도 구하지 않고
하나의 자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를 가졌다는 것
너는 무수한 말들이 적힌 백지를 내게 건넨다
더는 분실물 센터 주변을 서성이지 않기
'밤이 밤이듯이' 같은 문장을 사랑하기
미래는 새하얀 강아지처럼 꼬리 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새는 비를 걱정하며 내다놓은 양동이 속에
설거지통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 속에 있다는 걸
자꾸 잊어, 너도 누군가의 푸른 열매였다는 거
세상 그 어떤 눈도 그냥 캄캄해지는 법은 없다는 거
문도 창도 없는 방 안에서
나날이 쪼그라드는 고독들을
안희연 시인의 <호두에게>
마음이 단단한 껍질로 싸여있었다면
조금 덜 상처 받으며 살게 됐을까요?
아님, 깨지지 않는 단단한 껍질 안에서
더욱 더 외로운 사람으로 살게 됐을까요?
작지만 강인한 사람,
그 모습이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어떤 사람을 떠올려보는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