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27 (금) 전철에서 졸다
저녁스케치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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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정거장을 지나친 것을 뒤늦게 알고
화들짝 일어섰다 멋쩍게 주저앉는다.
늦은 장마철이어서 그나마 빈자리가 있었던 것인데
다리는 무겁고 눈꺼풀은 저절로 감기고
내 모르는 새 지나친 정거장만큼
생을 훌쩍 건너뛸 수는 없을까.
내릴 곳을 잊은 채 두 눈을 멀뚱거리는
낯선 얼굴이 차창에 어룽댔다.
실은 내릴 곳을 영영 잊어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지나친 정거장만큼이나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자각도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스쳐 지나간 정거장으로 돌아가야 할지
그대로 태연히 앉아 있어야 할지
다음 행선지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내릴지...

정철훈 시인의 <전철에서 졸다>


지친 몸을 손잡이 하나에 겨우 의지한 채,
생각 없이 차창 밖을 내다보게 되는 퇴근길.

창에 비친 나의 얼굴은 낯설기만 하고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땐,
눈을 질끈 감으며 생각합니다.

‘잠시 후 눈을 떴을 때,
내 삶의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