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5 (수) 자화상
저녁스케치
20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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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같은 꿈을 단념시킬 수는 없어서
구멍난 속옷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여행가방처럼
종자로 쓸 녹두 자루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는 뒤주처럼
그믐 달빛만 잠깐 가슴에 걸렸다 빠져 나가는 동그란 문고리처럼
나는 공허한 장식을 안팎으로 빛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산을 보곤 하는 것이 모두 외롭다는 것은 알았어도
저 빈 잔디밭을 굴러가는 비닐봉지같이

비닐봉지를 밀고 가는 바람같이 외로운 줄은 알았어도
알았어도 다시 외로운,
새로 모종한 들깨처럼 풀 없이 흔들리는
외로운 삶

은하수야 새털구름아 어디만큼 가느냐
배거번드bagabond처럼 함께 흐르고 싶다
만돌린처럼 외로운 삶
고드름처럼 외로운 삶

장석남 시인의 <자화상>


홀로 길을 걷는데
내 발자국소리가 너무 크게 들릴 때,
텅빈 집이 그날따라 더 휑하게 느껴질 때,
전화기를 들어도 달리 연락할 곳이 없을 때,
사람은 심히 외로워지곤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