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개성은 벗어 주머니 속에 넣으시고
앞머리 옆머리 뒤로 다 넘기시고 똑바로 정면을 보셔요
여권 사진이 나왔다
이게 뭐야 이게 나라구?
고개 들어 아저씨… 부르지도 않았는데
똑 닮았구먼요
그 말에 그냥
여권 사진 들고 나온다
낯선 나라에서
내가 나라고 증명하는 사진인데
내가 나 아닌 것 같아
나라는 국경마저 넘지 못한다
나라는 국경도 못 넘는데 공항에서 잘도 통과시켜주니
다행인데 억울하다 으슬으슬 몸살기가 돈다
이 얼굴보다는 낫지 않는가?
골수 야당도 아닌데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예쁘게 찍히기만 하면 나 같아 마음이 놓이는데
친구들은 나 같지 않다고 하니
나 같은 건 없는지 모른다
한 번도 실물을 보지 못한 내 얼굴을 데리고 다니는 나는
김종미 시인의 <내게 거짓말을 해 줘>
여권 사진을 찍을 때는
눈썹과 귀가 꼭 보여야 되죠.
앞머리도 바짝 넘기고,
머리도 잔머리 없이 꽉 묶고.
그러다보니 여권 사진 속 내 모습은 너무도 적나라합니다.
여권사진을 찍고 나면 늘 그런 생각이 들죠.
'이게 나라고?' '내가 이렇게 생겼다고?!'
여권사진을 보고 있으면
누가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거짓말이라도 해줬으면...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