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2 (토) 빈집과 무화과
저녁스케치
20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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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빈집도 담장의 넝쿨장미처럼
환하게 꽃 피던 시절이 있었나
낯빛 불그레한 사람들 드나들고
주인 할머니 머리칼이 은빛으로 찬란할 때
공장에선 양귀비꽃무늬 천들이
흥부의 박 속처럼 무더기로 쏟아지던 한철 지나

아들은 일 년 내 여름이라는 이름도 낯선 나라로 서둘러 떠나고
할머니는 슬그머니 요양원에 남겨지고

빈집이 빈집이 아닌던 때
빈집이 비로소 빈집인 때
그 사이에 무화과나무가 있다

현화식물문 목련강 쐐기풀목 뽕나무과 무화과나무속
꽃이 숨어 핀다는 은화식물
겸손하고 두근거리는 열매 보인다
아무도 손대지 않는 사이 과육 흐드러져
붉은 잇몸 드러내는 무화과의 달콤한 웃음 보인다

빈집의 귀퉁이 조금씩 허물어질 때
무화과는 조금씩 키가 자라고 조금씩 가지를 뻗고
몸 푼 지 사흘 만에 아이 잃은 여자가
버짐 자리 같은 상처 자국에 물려주는 지천으로 흐르는 젖
웅얼웅얼 잘 자라고 노래도 들려주는
무화과 넓은 잎 보인다
붉은 벽돌 속 녹슬어가는 철근이나
붕붕거리는 벌의 날개에 평등하게 비추는
오래된 햇살이 보인다

송은숙 시인의 <빈집과 무화과>


시골에 빈집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신발로 넘쳐나던 댓돌에는 바람만 휑하니 불고 우편함은 텅 비어있는...
반 쯤 열린 대문이 빈집임을 알게 하죠.

주인 없는 집에서 꽃피고 열매 맺는 나무들이
참으로 쓸쓸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