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 만에 아이를 업었다
앞으로 안는 신식 띠에 익은 아이는
자꾸 허리께로 흘러내렸다
토닥토닥 엉덩짝을 두드리자
얼굴을 묻고 나비잠에 빠졌다
슬그머니 내 등을 내려와 제 길 간 어미처럼
아이도 날리는 벚꽃잎 밟으며
자박자박 걸음을 뗀다
어릴 적, 어른들 따라 밤마실 갔다 올 때면
넓은 등에 얼굴 묻는 것이 좋아
나는 마실이 파할 즈음 잠든 척하곤 했다
업혀서 돌아올 땐 부엉이 우는 밤길도 무섭지 않았다
가끔 백팩이나 메는 내 어두운 등짝으로
어린것의 온기가 전해진다
내가 걸어온 한 생이
고작 두어 뼘 등판 위에서 뒤집혔다는 생각
겁 많고 무른 가슴팍 대신 갖은 상처를 받아내느라
딱딱해진 등이 혹 슬픔의 정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득, 누가 이 말간 봄빛 한나절을
내 빈 등에 올려놓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아이가 얕은 숨을 쉬며 옹알거렸다
멀리서 온 그 말씀, 하르르 날아가 버릴 것 같아
조심스레 포대기를 추슬렀다 출렁,
한 뼘 팔이 더 길어졌다
박수현 시인의 <어린 봄을 업다>
내 아이를 키울 때는
너무도 고단해서 느끼지 못했던 행복이
오랜만에 아이를 안으면 생각나죠.
겨우 두 뼘 밖에 안 되는 아이의 등이
온 기억들을 몰고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