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6 (금) 쫄딱
저녁스케치
2020.03.06
조회 383
이웃이 새로 왔다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잠깐 사이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 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환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반갑고 당당할 줄이야

이상국 시인의 <쫄딱>


서울에서 왔다는 말에
삐딱하니 색안경의 씌워지려던 찰나,
아이의 해맑은 한 마디에
경계 해제가 됩니다.

쉬쉬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마음의 문을 열게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