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7 (토) 바다 회사
저녁스케치
202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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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은 달
회사명은 밀물과 썰물

조금 때만 쉴 수 있는 어머니는 달이 채용한 2교대 근무자

철썩,
백사장이 바다의 육중한 문을 열면
발 도장을 찍고 물컹물컹 갯벌 자판을 두드려 바지락과 소라를 클릭한다

낌새 빠른 낙지는 이미 뻘 속으로 돌진하고
짱뚱어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을 살피느라 정신없고
농게는 언제나 게 구멍으로 줄행랑치기 바쁘다

성깔 있는 갈매기는 과장되게 끼룩 끼끼룩거리며 잔소리를 해댄다

가끔 물풀에 갇힌 새우와 키조개를 거저 얻기도 하지만
실적 없는 날은 녹초가 되어 비린내만 안고 퇴근한다

평생 누구 앞에서 손 비비는 거 질색인데
겨울바람에 손 싹싹 비벼대도 승진은 꿈도 꾸지 못했다

자별하다고 느낀 달의 거리마저 멀어지자
수십 년간 충실했던 밀물과 썰물 회사를 정리하였다

파도 같은 박수 소리
근속 훈장 하나 받아보니 구멍 숭숭 뚫린 직업병이었다

유계자 시인의 <바다 회사>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오늘도 바다로 출근할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하다고...
할머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들리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