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도 화투를 치나 봐
때를 기다렸다가 감췄던 패를 던지잖아
어느 겨울밤
사랑에서 왁자하게 패 던지는 소리
잠결에 뒤척이며 들은 거야
잠이 도망가면서 기억 어디쯤 메모를 한 거지
뚝심 좋은 동백이 자신 있게 1월을 던지자
쌀쌀맞은 매화가 2월을 던지잖아
피 한 장 걷어올 것 없는데
동시에 영춘화가 같은 패를 던지고
산수유가 3월을 던지니까
낙장불입인 줄 알면서 목련이 4월을 던졌어
그리고 이팝나무 가지를 툭 치자
5월을 던지며 봄이라고 우기는 거야
경로당에 둘러앉은 노인들처럼
소리를 내고 싶은 거지
소리만 크면 이기는 줄 아는지
던지는 패마다 알록달록 꽃판이니
그 길에 드는 사람은 꽃물이 들지
봄이라고 슬쩍 패 하나 던져
광 하나 물면 좋겠지만
어쩌겠어
다들 던진 패대로
울고 웃고 굽이 닳도록 뛰는 거지
강우현 시인의 <꽃패>
나무들의 화투가 한창입니다.
매화, 산수유, 목련 패까지 나왔으니
이제 벚꽃으로 꽃판이 열릴 차례만 남았네요.
‘광을 파니, 마니...’
나무들의 고성에
답답하고 우울했던 마음이
잠시나마 활짝 피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