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28 (금) 자두
저녁스케치
2020.02.28
조회 438
나 고등학교 졸업하던 해 대학 보내달라고 데모했다
먹을 줄 모르는 술에 취해
땅강아지처럼 진창에 나뒹굴기도 하고
사날씩 집에 안 들어 오기도 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을 안 해서 밥을 굶기로 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우물물만 퍼 마시며 이삼일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논으로 가고
어머니는 밭매러 가고
형들도 모르는 척
해가 지면
저희끼리 밥 먹고 불 끄고 자기만 했다
며칠이 지나고 이러다간 죽겠다 싶어
밤 되면 식구들이 잠든 걸 확인하고
몰래 울 밖 자두나무에 올라가 자두를 따먹었다
동네가 다 나서도 서울 가긴 틀렸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낮엔 굶고 밤으로는 자두로 배를 채웠다
내 딴엔 세상에 나와 처음 벌인 사투였는데
어느날 밤 어머니가 문을 두드리며
빈속에 그렇게 날것만 먹으면 탈난다고
몰래 누룽지를 넣어주던 날
나는 스스로 투쟁의 깃발을 내렸다
나 그때 성공했으면 뭐가 됐을까
자두야

이상국 시인의 <자두>


‘만약’이라는 단어를 붙여
아쉬움 남는 과거를
재구성해볼 때가 있습니다.
참으로 부질없는 일인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