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허물고 나니 상추밭 세 고랑이다.
증조할아버지 머물다 간 흔적이
고작 상추밭 세 고랑으로 남았다
세 고랑을 막 깨인 병아리들이
앙중맞은 발길로 뒤적거리고 다닌다.
여기를 헤집자 사랑방 증조할아버지 헛기침 소리 들리고,
저기를 건드리자 진한이 아재 엉거주춤 뒤를 닦고 있다.
삐약삐약 종종거리는 병아리 발자국 늘어갈수록
희뿌연 기억들 불쑥불쑥 몸 뒤채며 일어선다.
상추밭 위로 초가도 아니고 슬레이트도 아닌
한 집 한 채 엉거주춤 세워진다.
그 헌 집 속에 내 눈 깃들자,
헌 집 짬을 쪼아 병아리들 우 물러 나간다.
지나간 시간들 결코 허전하지 않다.
상추에 덧씌워진 과거의 저 촘촘한 틈을
오늘 내가 미처 보지 못할 뿐이다
정우영 시인의 <상추밭>
매일 지나는 길이라며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늘 찾아오는 아침이라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
우리가 지나온 시간 중에
결코 아무 것도 아닌 시간은 없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