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기 귀찮아 두어 달 내버려둔 수염
누구는 화가 같다 하고
누구는 시인인 줄 알았다 하고
아이들은 대뜸 노씨 성 쓰는
숙자 씬 줄 알았다고 깔깔거린다
십 년 만에 만난 장사하는 조카 하나는
무근 교수님 같다고,
교수님에 박사님이라면 또 몰라
학교 선생이 무슨 수염이냐고,
안 잘리냐고,
터럭 하나도 맘대로 못하는 세상
나도 이제 수염을 기르련다
고증식 시인의 <나도 이제 수염을 기르련다>
새해에는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해보고 싶은 일 하나는 해봐야겠습니다.
수염을 길러보고,
빨간 구두도 신어보고,
밝게 염색도 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이면
한 번 해봐도 되는 거 아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