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이 나간다
처음 도시로 이사 나와
서부 중고물물센터에서 삼십만 원 주고 사온
자개장롱이 집을 떠나고 있다
십오 년이니 제 딴에는 견딜 만큼 견딘 것인가
장롱 들어낸 자리에 소복한 먼지
그 속엔
향기 다 사라진 아카시아껌
패가 제대로 나오지 않던 아버지의 화투짝과
푸른 날 잃은 도루코 칼 한 자루,
사춘기 울음이 지나가고
부끄러운 그림자 머물기도 하던
내 지난 열병의 한 궤짝,
오래도록 한 식구이던 것이 이제 폐물이 되어 떠나간다
과분할 정도로 반짝반짝 빛이 나던
그나마 유일한 우리집의 자랑이던 자개장롱,
도둑맞을 추억 하나 없이
포근한 이불 한 채 잘 개켜 넣어주지도 못했는데
장롱은 삐걱삐걱, 맞지 않은 아귀를 절룩이며
피곤한 십오 년 가족사의 흔적마저 모조리 트럭에 싣고 간다
이제 쉰을 훌쩍 넘어선 아버지는
돋보기 너머로
트럭의 꽁무니를 장롱의 오래된 뒷모습을 쳐다보신다
누구라도 뒷모습이란 저처럼 무거운 것이었나
김은경 시인의 <자개장롱>
어릴 적 귀한 대접을 받던 자개장롱이
한동안 인기가 뚝 떨어졌다가
요즘 다시 인기가 많아져
높은 값에 팔린다고 하죠.
귀한 장롱이라며 애지중지 하던 엄마의 손길,
반짝거리는 자개를 만지며 놀던 나의 어린 시절...
유행을 따라 잊혔던 추억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