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청소를 끝내고
마지막 설거지로 고추장 단지를 열어본다
스텐 국자가 휘어지도록
내용물들 딱딱하게 굳어있다
남을 향해 경직된 사람 속이 이러할까
나는 단지 속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경직 돼 있던
내 딱딱하게 굳은 속이
저러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떡볶이를 볶을 때이거나
부추 비빔밥을 힘들여 비빌 때의 매콤한 맛이
사리처럼 단단한 아픔 한 조각이
그 순간 내 목젖을 치고 넘어간다
울분 덩어리 삶에도 결코 마르지 않는
식욕보다 강한 희망 같은 게 있었구나
하면서 생수 한 바가지를
단지 속에 붓는다
더깨가 진 시간들은 베란다 밖
질척거리는 세상으로 떠 내 버리고
마음 다 말라버린 몸 속에
다시 마음을 쟁여 넣듯
삐득삐득 말라버린 독 속의 장에
생수를 비벼 섞는다
언젠가 저 응어리진 마음이
축축하게 풀릴 날을 생각해 본다
한미영 시인의 <고추장 단지를 들여다보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가지면서,
음악이 주는 행복을 느끼면서,
물기 없이 말라버린 마음을
촉촉하게 만들어봅니다.
내 마음 한 술, 어디다 떠놓아도
부드럽게 풀어질 수 있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