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좀 우울했으면 좋겠어
조금 전까지는 알았는데
지금은 죽어도 생각 안 나는 어떤 것이
허공과 허공 사이에 걸려있는 오후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고백하는 누군가를
이제는 만나도 좋겠어
우연히 만난 불꽃축제처럼 황홀하지만 쓸쓸한
그 강변의 바람 같더라도
이제 쉽지 않아 내 맘대로 나를 분리하는 일은,
가령 블라우스에 묻은 찌개 국물처럼
나는 그대로가 나일뿐
우울해지는 일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엔
어떤 전철을 타고 흘러가야겠니
내가 여기서 아, 할 때
누군가 어,
하고 대답해줄 그 어디
최라라 시인의 <마두역에 서 있는 가방>
가방이나 지갑이 없는데
도통 어디다 뒀는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죠.
마음은 급하고 머릿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데...
속도 모르는 하늘만 파랗고 청명한
그런 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