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를 벗어놓으면 바지가 담고 있는 무릎의 모양
그건 바지가 기억하는 나일 거야
바지에겐 내 몸이 내장기관이었을 텐데
빨래 건조대에 얌전히 매달려 있는
내 하반신 한 장
나는 괜찮지만
나 이외의 것들은 괜찮을까, 걱정하는 밤
내가 없으면 옷들은 걸어다니지 못한다
박연준 시인의 <바지를 벗다가>
나는 괜찮은데
정작 우리 가족들은 괜찮을까,
나의 부모님이 나보다 더 아파하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밤이 있지요.
그들은 무릎이 나온 바지보다 더
깊고 짙게 나를 기억하고 있을 텐데...
내가 없으면 건조대에 걸린 빨래들보다 더
힘없어 할 텐데...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