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8 (수) 아버지의 나이
저녁스케치
2024.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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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강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절벽을 휘감아 돌 때가
가장 찬란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해 질 무렵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도 알게 되었다
정호승 시인의 <아버지의 나이>
그 옛날 아버지들은 말이 없으셨지요.
대신 온몸으로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의무와 책임감, 그리고 우직함으로,
굳은살 박힌 손으로, 축 처진 뒷모습으로.
미소 지을 때마다 깊어지는 주름으로.
그래설까요.
거나하게 취한 아버지가
흘러간 유행가를 흥얼거리며 돌아와
잠든 우리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를 때면
그렇게 마음이 시릴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