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늦은 밤, 텅텅 빈
17번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에
여럿 딸린 동그란 입의 식구들과
하루의 이야기들을 딸그락거리며
죽하니 가로로 서 있는
버스 손잡이를 언제나 그렇듯
무심코 바라보았습니다
온갖 삶의 부스러기, 버려진 입김들이
차창의 성에로 번져가는 어둠의 버스 안
그 생명 없는 버스 손잡이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시큰 허리가 아파왔습니다
오만 잡동사니들의 억센 손아귀에
온 삭신 다 내주고도
묵묵히 딸린 동그란 식구들을
딸그락 딸그락 어르면서
삶의 종점으로 저물어 돌아가는 버스 손잡이
난 얼마나 삶의 까탈 부리며 살아왔던가요
버스 손잡이 같은 사람들이
버텨주는 한세상
흔들거리는 이 땅에서 여태껏
난 그 누구의 손잡이도 되지 못하였습니다
유하 시인의 <막차의 손잡이를 바라보며>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사람,
흔들리는 땅에서도 의지가 되는 사람,
억세게 잡아당기고 매달려도 묵묵히 받아주는 사람,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런 손잡이가 되어준 적 있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