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이 다숩게 익어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서 돌아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린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거리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대지 않았다
땅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내라 나무야 심내라
땅심아 들어라 땅심아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님은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주위를 파고 퇴비를 묻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허리 굽혀
땅심과 뿌리를 보살펴야 하는 거라며
정직하게 해거리를 잘 사는 게
미래 희망을 키우는 유일한 길이라며
박노해 시인의 <해거리>
사람도 열매가 잘 맺히지 않을 때는
해거리를 한다고 생각하면 안될런지요.
'너는 왜 열매 맺지 못하냐'고 타박하는 대신
뿌리를 보며 ‘힘내라, 힘을 내라!’ 외쳐주면
그 다음에는 튼실한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