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1 (화) 오래된 가구
저녁스케치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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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壯丁)의 힘에 밀려
끙, 간신히 한 발을 떼어놓는다
움푹 파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지켜온 이십 년의 체중이
비닐장판에 찍혀 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들여다본
허름한 목판(木版)
긁히고 멍든 자국이 드러난다
나무의 속살에 이렇듯 상처가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문짝에 틈 하나를 내주고
서서히 기울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서 있는 네게 기대어
책을 읽고 아이를 낳고 TV를 보며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었다

열 자나 되는 몸통을 지붕 아래 세우고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 한 그루
어깨를 안아보니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 들린다
오래된 가구는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아래 무성한 그늘을 떨어뜨리고

마경덕 시인의 <오래된 가구>


처음에는 귀한 대접 받으며 실려 왔던 장롱도
시간이 지나니 흠집이 생기고, 색도 바래고,
어느 자리는 뒤틀려 있기도 합니다.
이삿날 내놓은 장롱이
우리가 지나온 긴 삶을 닮은 거 같아
마음이 애잔해지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