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한판승부

표준FM 월-금 18:00-19:30

"인터뷰를 인용 보도할 때는 반드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십시오."
-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

4/22(금) "살인사건 유가족이면 평생 웃으면 안되나요?"
202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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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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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CBS 라디오 <한판승부> FM 98.1 (18:25~20:00)
■ 진행 : 박재홍 아나운서
■ 패널 : 진중권 작가, 김성회 소장
■ 대담 : 서원대 상담심리학과 김태경 교수

◇ 박재홍> 여러분께서는 시사 라디오 방송의 고품격 방송이죠. 한판승부와 함께하고 계십니다라고 애청자들이 많이 써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한번 읽어봤고요. 한판클라스 시간, 오늘은 세상이 강력범죄라는 사건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을 때 가해자 신상과 범죄 동기만을 쫓을 때 한 학자가 이렇게 질문을 하셨습니다. 범죄의 선량한 피해자 그리고 그 피해자의 유족 그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분이죠. 최근에 ‘용서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세상에 내어놓으신 분입니다. 우석대 상담심리학과의 김태경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김태경> 안녕하세요. 참고로 우석대가 아니라 서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입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책에는 잘못 나왔군요, 그러면.

◆ 김태경> 제가 이직을 했습니다.

◇ 박재홍> 그렇구나, 최근에는 서원대. 저도 서원대로 알고 있었는데 왜 책에 우석대로 적혀 있지, 그래서. 서원대 제가 운호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서원대와 붙어 있잖아요. 그렇죠.

◆ 김태경> 그렇습니다.

◇ 박재홍> 진 작가님과 우리 김성회 소장님과 인사 나누시고.

◆ 김태경> 안녕하세요.

◆ 김성회> 저는 경기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 진중권> 공중파를 이렇게 낭비해도 되는 겁니까?

◇ 박재홍> 죄송합니다. 우선 교수님의 직함이 꽤 많습니다. 임상심리학자, 피해자학자, 범죄심리학자 굉장히 많은데 어떤 일을 하시는지 짧게 설명을 해 주시면.

◆ 김태경> 일단 임상심리학자는 정신과적인 문제를 가진 분들을 진단하고 평가하고 치료하는 직업군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그 일을 하면서 형사사법절차 내에서 심리학적인 자문을 하고 범죄피해자들을 치유하고 이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직군을 임상수사심리학자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 박재홍> 임상수사심리학자. 굉장히 깊이가 있네요. 이 일을 굉장히 오랜 시간 해오셨는데 최근 내놓으신 책 이름이 ‘용서하지 않을 권리’입니다. 아주 범상치 않아요. 사실은 용서라는 주제 자체는 일단 우리가 무조건 해야 하는 주제로 막 교육을 받아왔고 좀 본능처럼 인식돼왔는데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닙니까?

◆ 김태경> 이게 또 한 편으로는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니 용서할 권리도 있다라는 것처럼 그렇게 이중적인 메시지여서 조금 조심스럽긴 했는데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용서를 굉장히 강권하는 건 분명한 것 같고 특히 범죄 피해라는 영역의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제가 본 경험 20년이 넘었는데. 그 경험 중에는 아주 넌지시 용서를 강권하는 현상을 되게 자주 봤거든요. 그래서 그분들에게 용서를 권할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 진중권>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입니까? 피해자한테 용서를 하라라고 누가 어떤 자격이 있거나 권리가 있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 김성회> 예를 들어 제가 최근에 본 것만 해도 조금 됐습니다만 5.18 유족들에게 전두환을 용서하라 그런 얘기들 자주 쉽게 하잖아요.

◆ 김태경> 사실은 잊어버리라는 얘기도 용서하라고 하는 거거든요.

◇ 박재홍> 진 작가님, 마이크를 가운데로 써주세요.

◆ 김성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용서라는 건 힘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한테만 할 수 있는 행위. 즉 제가 아이가 까불면 제가 아이를 용서할 수는 있어도 그러니까 힘이 없는 사람이 용서를 하는 방법이 없잖아요. 용서를 안 하는 피해자의 경우 용서를 하지 않으면 복수를 할 수 있느냐? 그럴 처지가 아니라고 하면 그 사람에게 용서를 얘기하는 건 저도 참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 진중권> 범죄 피해자 같은 경우는 어떤 경우 그런 누구한테 그런 얘기가 나와요?

◆ 김태경> 사실은 안타깝게도 가까운 지인들한테 제일 많이 듣게 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에게서도 많이 듣게 되고.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되지 이런 식으로. 왕왕 들으십니다.

◆ 진중권> 그런데 또 종교 지도자님들이 용서하지 마세요 이럴 수도 없는 거고.

◆ 김태경> 그러니까 용서라는 얘기를 떠올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피해자에게 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가 그를 위한다는, 그분들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참 많이 하게 되는 말이라는 거죠.

◇ 박재홍> 그러니까 그분들 위해서 한다는 말인데 결국 그분을 위한 말이 아닌 게 되는 거죠, 사실은.

◆ 김태경> 그래서 제가 안타까웠던 건 분명 선의에서 시작된 일이에요, 대부분 보면. 그런데 잘 몰라서 선의를 베푼다하고 생각하고 하신 말이 2차 가해가 되는 거죠.

◆ 김성회> 너 편하려면 용서해야 돼 이런 표현들.

◆ 김태경> 맞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교수님 책의 부제가 ‘피해자를 바라보는 적정한 시선과 태도에 관하여’입니다. 그러니까 적정한. 이게 정말 상대 상태와 수준, 감정 상태를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은 어려운 것 같아요.

◆ 김태경> 그렇죠. 사실은 직접 범죄 피해를 당하신 분도 또 다른 피해자의 심리 상태를 가늠하는 건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피해를 당하신 분이 가끔은 상처를 주는 말을 더 많이 하기도 하세요. 그러니까 상대방이 나 같을 거라고 기대하시는 거죠. 나는 이렇게 하니까 도움이 되더라.

◇ 박재홍> 훌훌 털고 일어났다라는.

◆ 김태경> 그렇죠.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하시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적정한’은 사실은 굉장히 어려울 것 같지만 간단하게 말할 수 있거든요. 아는 척하지 마라.

◇ 박재홍> 아는 척하지 마라.

◆ 김태경> 내가 모를 수 있다는 걸 일단 인정해라. 그러니까 내가 모를 수 있으니 함부로 넘겨짚지 마라. 그 정도만 지켜도 부적절한 정도는 면하지 않을까.

◇ 박재홍> 그렇군요.

◆ 진중권> 피해자에게서 그냥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 김태경> 할 말을 한 절반만 줄여도 2차 가해가 많이 줄지 않을까 싶습니다.

◇ 박재홍> 그러니까 어떤 피해자나 슬픔에 빠져 있는 분들을 보면 우리가 위로해야 한다는.

◆ 진중권> 의무감이 생기잖아요.

◇ 박재홍> 강박이 있잖아요. 착한사람 콤플렉스라고 해야 하나요. 좋은 사람 되고 싶어서 많이 힘들지. 이럴 때는 이렇게 하면 좋겠어 이런 말 자체도 상처가 된다는 얘기죠.

◆ 김태경> 그 얘기를 너무 하고 싶으신 거예요. 위로를 너무 하고 싶은데 여기서 핵심은 그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내 마음이거든요. 나의 마음을 나의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위로라는 걸 던지는 거예요. 그런데 상대방은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나는 위로라고 생각했던 말이 위로가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내뱉는다는 건 결론적으로는 피해자를 위한 건 아니에요.

◆ 진중권> 자기 마음이 편해지려고.

◆ 김태경> 나 꽤 괜찮은 사람이지, 이만하면. 나 좋은 이웃이야.

◇ 박재홍> 나 위로하는 사람이야.

◆ 김태경> 그런 감각을 얻는 게 목적일 때가 많아요.

◆ 김성회> 우리나라 연간 형법 범죄 발생 건수 이걸 좀 보면 국민 한 사람이 평생 살아가면서 형법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1을 넘는다라고 하는데 가능성이 1을 넘는다는 건 어떤 말씀이신지 제가.

◆ 김태경> 이게 이런 거예요. 범죄 발생률 곱하기 평균 기대수명을 인구수로 나누는 거죠. 그러면 거의 1이 넘더라고요. 그런데 물론 여기에서는 범죄 피해를 일생 살면서 한 번 이상 당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으세요. 그런 분들 때문에 약간 과장된 것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야 되는 게 범죄 피해인데 범죄인지 모르는 분들도 계시고 범죄피해를 당했으나 신고하지 않는 분은 더 많을 거거든요. 그렇게 치면 우리가 평생 태어나서 돌아갈 때까지 한 번 이상의 범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고 볼 수 있죠.

◆ 김성회> OECD의 다른 나라들은 어떤가요?

◆ 김태경>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범죄율이 높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비교적 안전한 나라에 속한다고 볼 수 있고요. 제가 여기서 말씀드리고 싶은 건 누구든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누군가 범죄 피해자가 되는 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어떤 면에서 그냥 운이 나빴다.

◆ 김성회> 말씀하시니까 초중고등학교, 군대에서 두들겨 맞았던 생각이 나네요.

◆ 김태경> 저도 있거든요. 도둑이 들어서 책을 다 들고 갔거든요.

◆ 진중권> 1년 사이에 자전거 3대를 도난당했습니다.

◇ 박재홍> 피해 사례가 속속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지금 어떤 상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것이냐라는 얘기를 좀 하고 있는데요. 지난 16일이 세월호 8주기였습니다. 이 얘기는 잠깐하고 책 얘기로 넘어가면 좋겠는데요. 사실은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상흔도 너무 컸고 유족들에게도 남긴 상흔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8주기까지 됐으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만 좀 얘기하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그래서 이 문제를 우리 사회 또 우리 유족들이나 그분들은 어떻게 이문제를 직면하고 또 지나가야 할지 정말 어려운 문제인 것 같아요.

◆ 김태경>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은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던 건 딱 이런 것이었던 것 같아요. 이런 죽음도 있을 수 있어라는 생각에서 오는 극강의 공포. 그리고 이런 죽음인데 실체가 규명되지 않을 수 있어라는 것이 주는 분노와 실망감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굉장히 강한 충격을 줬던 것 같고요. 그런데 그 충격 받은 상태에서 우리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유족들의 고통에 공감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유족들의 고통에 공감하면 나도 힘들어지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심리적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 같고. 그래서 그들이 오랫동안 비통해하는 것,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또 다른 측면 때문일 거야. 심지어 현실적인 이익을 위한 걸 거야라는 식의 오해와 편견이 누적이 되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이 되지 않고 누적된 채로 계속 뭔가 어디에선가 확대 재생산되고 그러다 보니 유가족분들은 유가족분들대로 고통스럽고 그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럼 심리적 거리두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이제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함께 또 그걸 같이 공감을 또 해 줘야 되고 해야 될 텐데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 김태경> 사실은 비슷한 얘기인데요. 넘겨짚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유족들이 어떤 걸 경험하고 있는지 사실 우리 잘 모르잖아요. 어떤 한 측면에서는 그분들이 오열하는 그런 모습만 조명해서 보여주고 한 측면에서는 그분들이 화나는 모습만 보여주고. 이렇게 분절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다 보니 오해가 정말 많이 생기는 것 같고 그들의 경험을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그들의 면면, 그분들이랑 대화를 해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거든요. 잘 모르는데 넘겨짚고 안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박재홍> 알겠습니다. 우리 김태경 교수님과 본격적인 책 얘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용서하지 않을 권리라는 책인데요. 책 내용을 저희가 함께 또 함께 읽으면서 그 내용에 대한 얘기를 함께해보겠습니다. 상실과 고통의 문제. 피해자에게서 중요한 게 주변인, 또는 지지가나 조력자들의 태도와 언어인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한 고민을 토로한 분의 사연 책의 한 대목으로 함께 듣고 말씀 이어가겠습니다.

“저는 살인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지 3년이 됐습니다. 아직도 남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요. 이렇게 힘든데도 요즘 가끔 저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요. 근데 참 이상하죠.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잊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만 울고 이제 웃어라고 재촉하던 주변 사람이 막상 제가 웃으니까 뒤에서 욕을 해요. 그렇게 남편을 보내고도 좋다며 웃는다고.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사람들을 안 만나려고 해요. 새로운 사람들 만나도 오해받을까 봐 무서워서 제가 살인사건 유족이라는 말은 절대 안 해요. 근데요, 선생님. 너무 비통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웃기도 해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그나마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 박재홍> 용서하지 않을 권리 책 중의 한 대목이었는데요. 교수님, 정말 실제로는 이런 경우 많을 것 같아요.

◆ 김태경> 아주 많죠.

◇ 박재홍> 살인사건 피해자도 있을 수 있고 사별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 김태경> 이게 조금 다른 범죄 피해랑 살인사건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이제 후유증의 양상이 드러나는데. 살인사건 유가족분들 같은 경우에는 나아지고 싶어하지 않으세요.

◇ 박재홍> 나아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 김태경> 다른 유형의 범죄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나아지지 않을까 봐 걱정하시는데 살인사건 유족들은 나아질까 봐 걱정해요. 그러니까.

◆ 김성회> 마음의 상태가요?

◆ 김태경>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살인으로 잃었는데 내가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자체가 용서가 안 되는 거죠.

◆ 진중권>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야 이런 느낌이네요.

◆ 김태경> 그렇죠. 그래서 평생 동안 오래오래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내가 머물러야만 돌아가신 분에 대한 의리 뭐 이런 거 그 사람에 대한 사랑 이런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나아지는 것에 대해서 되게 죄책감을 많이 느끼시죠. 그래서 체중도 느는 걸 되게 싫어하시고.

◇ 박재홍> 체중까지.

◆ 김태경> 체중이 어느 순간 조금 많이 빠졌다가 조금씩 늘어날 수 있잖아요, 식사를 조금이라도 하시면. 그런데 100g, 200g 느는 것조차도 굉장히 죄책감을 느끼시죠.

◆ 김성회> 교수님, 죄송한데 거기에 보태서 하나만 여쭤보고 싶은 게 살인의 경우도 있지만 본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에 가족들도 마찬가지입니까?

◆ 김태경> 그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런 분들의 경우에는 약간 더 큰 약간의 배신감. 이런 게 더 많으신 것 같고요. 그러니까 나를 버리고 갔다라는 생각을 좀 더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나에게 어떤 한 징후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오는 야속함, 배신감이 굉장히 커서 또 다른 결의 고통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 박재홍> 정말 교수님 말씀 들으니까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정말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네요. 함부로 넘겨짚거나.

◆ 김태경> 저도 요즘 상담을 하면서 아주 가끔 실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굉장히 예민한 지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말을 한마디, 한마디 할 때 신경을 많이 써서 해야 되는 작업입니다.

◆ 진중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뭐랄까 그분들 도와드리는 게 또 직업이시잖아요. 그 일을 다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왜냐하면 전문가로서 보시기에 그런데 저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올바른 방식이 아닌데 이런 느낌이 들 때 어쩔 수 없이 또 조언을 하거나 어떤 식으로 도움을 드려야 되지 않습니까?

◆ 김태경> 트라우마로부터 스스로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전략은 없다고 기본적으로 생각을 해요. 저는. 왜냐하면 그분이 그 순간에 선택한 건 그분이 자기의 삶에 대해서 사실 제일 잘 아는 분들이잖아요. 그리고 그분이 그 삶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래서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요. 그런 선택을 했을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서 공감을 하고. 거기에 조금은 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정도를 말씀드리는 것. 왜냐하면 사건은, 범죄 피해는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삶은 여전히 자신의 몫으로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범죄피해자이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삶을 유지하셔야 하고 남아 있는 삶의 부분에서는 본인이 통제감을 느끼셔야 하거든요. 이게 트라우마 치료의 되게 중요한 원칙이에요. 그래서 삶에서 여전히 내가 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남아 있다라는 감각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이런 작업을 해요.

◆ 김성회> 저희들 같은 경우 모르는 생각에는 그렇게 극단적인 고통은 모르겠습니다마는 무슨 고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그만 잊어, 이제 극복해야지 이런 얘기를 하는 건데 이런 말조차도 되게 잘못된 말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 김태경> 이게 우리의 뇌에서 범죄피해처럼 강력한 트라우마는 잊혀질 수가 없어요. 잊으면 안 되는 거예요, 뇌에서는. 그러니까 생명 유지를 위해서 너무나 중요한 데이터를 머리에서 학습한 거기 때문에 잊을 수 없거든요. 잊을 수 없는 사람에게 자꾸 잊으라고 하시는 거죠. 그러면 잊을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까지 생겨요. 나는 이런 일이 있는데 이걸 극복하고 잊을 수 있는 능력이 없어라는 죄책감이 더 생길 수 있는 거죠.

◇ 박재홍> 그러니까 우는 자에게는 충분히 울 수 있는 시간을 줘야겠네요.

◆ 김태경> 맞습니다.

◇ 박재홍> 울지마, 울지마 굉장히 폭력적인 말이에요.

◆ 진중권> 사실 저는 아내가 한번 이탈리아 여행을 하다가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눈앞에서 소매에서 꺼내가면서 씩 웃으면서 그냥 가더래요. 그게 너무 분했던 모양이에요. 저는 그때 제가 잊으라고 그랬거든. 돈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네가 속상해까지 하면 손해가 2배가 되니까 잊는 게 합리적이야라고 나는 또.

◆ 김성회> 합리적인 조언을 하셨군요.

◆ 진중권> 합리적인 조언을 했는데 그때 얼마나 내가.

◇ 박재홍> 남편의 합리적인 조언은 정말로 폭력이군요.

◆ 김태경> 상실감에 대한 공감을 해 주시면 나머지는 알아서 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피해자는 마치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도 모르게. 그래서 자꾸 조언을 하게 되는데 그분들도 하세요. 그러니까 저는 피해자분들이랑 상담하면서 가끔 이분들이 이렇게 시적일 수 있나, 이분들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상태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얘기를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피해자라고 해서 그 사람이 지금 지혜롭지 않고 합리적인 생각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조언을 하는 거죠.

◇ 박재홍> 피해자 얘기를 할 때 우리가 가장 실수를 많이 하는 부분이 피해자다움입니다. 미투 얘기를 할 때도 항상 그런 논쟁이 많이 있긴 한데. 책에도 같은 내용이 소개돼 있어요. 그래서 책 내용 소개된 부분을 저희가 함께 또 읽으면서 이야기 이어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조사 장소가 다른 경찰이나 여러 피의자와 피해자가 왔다 갔다 하는 곳이어서 제 진술이 남들에게 언제든 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게다가 형사들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무슨 사건이야, 이렇게 물어보면 담당 경찰이 제 앞에서 데이트 폭력 사건이고 뭐 어쩌고 이렇게 설명해 주고. 그러면 그냥 아, 하고 가시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형사님은 아가씨,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해서 만나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고요. 그때는 진짜 그 자리에 있는 것조차 너무 싫었어요. 한 강력계 형사님이었던 것 같아요. 종이쇼핑백에다가 소화기랑 칼이랑 바가지를 들고 들어오기에 필요한 걸 샀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이 사건 증거물이라면서 하나씩 꺼내서 저랑 대화하던 경찰한테 넘겨주더라고요. 제 눈앞에서 그걸 보니까 진짜 토할 것 같았어요.”

◇ 박재홍> 2차 피해사례에 대한 그런 내용이고 또 이런 것들이 미투 어떤 관련해서도 피해자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교수님, 일단 이 피해자다움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말 너무 어려운 단어예요, 핵심적이고.

◆ 김태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쉽게 쓰는 단어죠. 그러니까 이게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할 수 있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 박재홍> 피해자에게는 정말 상처가 되는 말이지 않습니까?

◆ 김태경> 그렇죠. 그러니까 이게 피해자답게 행동하면 왜 이렇게 힘들어하냐고 비난하고 피해자답지 않게 행동하면 왜 피해자답지 않냐, 네가 하는 말이 사실이냐 이렇게 의심을 하기 때문에 사실은 이중 덫인 것 같습니다, 피해자한테.

◆ 김성회> 그런데 저는 정말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어떤 게 피해자다운 것인가요?

◆ 김태경>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흔히 많이 얘기하는 게 예를 들면 가해자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하루 종일 울고 비통해하고 일상생활 유지를 전혀 못하고 이런 것들이 피해자다운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김성회> 거꾸로 말하면 본인이 폭행당한 증거를 씩씩하게 내놓으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하는 게 피해자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여겨지는군요.

◆ 김태경> 진정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 김성회> 그럼 진정성을 의심받기도 하고 실제로.

◆ 김태경> 물리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 특히 성폭력이나 이런 사건에서는 사실 피해자 진술밖에 없는 사례가 워낙 많거든요. 그러니까 피해자 진술이 얼마나 진정성 있느냐를 가지고 유무죄를 판단하는 경우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사건에서 피해자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단초가 되는 거죠. 예를 들면 음주 상태에서의 어떤 성폭력 피해라고 하면 음주 후에 성폭력을 입었고 다음 날 가해자가 예를 들면 같이 해장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가시겠어요, 안 가시겠어요? 침묵.

◆ 진중권> 보통은...그렇죠.

◆ 김태경> 가실까요? 이 질문을 제가 학생들에게 되게 많이 하거든요. 그런데 절반은 간다고 하고 절반은 가지 않는다고 해요. 가면 이렇게 되는 거죠. 성폭력을 당하고도 거기를 따라가? 피해자답지 않아.

◇ 박재홍> 그다음 날 해장국 먹었잖아, 이런 식으로.

◆ 김태경> 그렇죠. 그리고 따라가는 피해자 입장에서 화가 나서 따라가지는 않잖아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으니 어쨌든 증거라도 잡으려고 따라갔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가해자 앞에서 나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야 하잖아요. 그 모든 것들이 이제 CCTV에 찍히거나 해장국집 주인의 눈에 찍히는 거죠. 그러면 그들이 다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되죠.

◆ 김성회> 예를 들면 김치를 덜어줬다 이런.

◆ 김태경> 아니면 화가 나거나 회피하는 표정이 없었다, 심지어는 되게 친한 사이 같았다라고 얘기를 하면 이제 다 피해자답지 않다고 공격을 받게 되죠.

◇ 박재홍> 아까 사연에서 보면 수사기관에서의 2차 가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런 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하시는 분들의 교육도 필요할 것 같은데. 이게 좀 여전히 있는 거죠, 우리 안에.

◆ 진중권> 제도도.

◇ 박재홍> 제도상으로도.

◆ 김태경> 피해자, 이게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한 제도들이 지금 많이 마련이 돼 있기는 한데 없는 것보다 훨씬 낫고 그런 제도들이 점점 좋아지는 것도 사실인 것 같은데. 아직은 성폭력 피해자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는 상태고요. 그게 다른 종류의 범죄피해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많이 예전보다 나아졌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 과정 안에서 2차 피해가 벌어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가장 피해자들을 괴롭히는 건 수사 과정에서 진정성을 의심받는 것 더하기 법정증언.

◇ 박재홍> 법정증언.

◆ 김태경> 법정증언은 굉장히 좀 특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잖아요. 항상 피해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들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모욕적인 얘기를 듣게 되고 그것 때문에 자살을 하거나 이런 분들도 있으십니다.

◇ 박재홍> 실제로 상담하시면서도 그런 사례를 보셨나요?

◆ 김태경> 자살하신 분은 제가 만날 수는 없고 성공하지 않으신 분을. 그래서 법정증언은 피해자들에게는 너무너무 스트레스 받는 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 박재홍> 그런데 오히려 반대로 사건현장 경찰들의 배려가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죠.

◆ 김태경> 많습니다. 먼저 법정증언의 경우에도 절차만 피해자 보호적으로 진행되면 피해자들의 회복에 훨씬 도움이 되세요.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느낌 때문에 절차에 대한 공정성을 훨씬 높게 자각하는 경우가 있고요. 수사단계에서도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우연히 별거 아닌 것 같은 도움을 줬는데 그게 이분들의 회복에 도움이 되는. 예를 들면 미지근한 물을 한잔 건넨다거나 앉아계시라고 의자를 조금 권하거나 이런 정도만으로도 되게 많이 도움이 되십니다.

◆ 진중권> 법정진술을 힘들어하신다고 했는데 아마 이런 건가요? 예를 들어서 법정에서 진술을 하게 되면 저쪽도 가해자의 변호사가 있을 것 아닙니까? 공격이. 질문이 굉장히 공격적이잖아요.

◆ 김태경> 그렇죠.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많이 하시죠.

◆ 진중권> 그래서 주로 그런 건가요?

◆ 김태경> 그렇죠. 거기에다 사건하고 상관없는데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될 만한. 3살 때 옆집에 가서 동전 훔쳤죠? 이런 것까지 얘기하게 되니까 수치감을 느끼는 거죠.

◇ 박재홍> 교수님께서 선한 의지가 항상 선한 결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의지가 아닌 적당한 방법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벌써 교수님 보내드릴 시간이 돼서요. 이러한 주변의 어떤 조언 강박 혹은 위로강박도 있는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또 어떠한 것이 가장 좋은 도움일지 이러한 도움 말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태경> 그러니까 거듭해서 계속 말씀드리는 것처럼 안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그리고 물어봐라. 그리고 적당한 게 생각 안 나면 차라리 침묵하고 연민어린 자세를 유지해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박재홍> 침묵하라.

◆ 김태경> 네, 침묵하되 의심하게 보이지 않게 연민어린 자세 제스처를 해 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끝나기 전에 이 얘기는 꼭 하고 싶어요. 피해자들에게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제가 한 얘기는 아니고. 당신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일 뿐입니다라는 얘기가 있어요. 저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자신의 닥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제대로 이해했을 때 어떠한 갈등과 어떤 아픔이 해소되는 그런 과정을 겪을 수 있겠네요.

◆ 김태경> 그것도 있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피해자여서 망가진 사람이 아니라 손상된 부분을 회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있는 훌륭한, 여전히 당신은 당신 삶의 주인이고 전문가다라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 박재홍> 교수님의 그 한마디 자체가 큰 위로가 되는 말인 것 같아요. 오늘 방송을 들으시는 분들도 교수님의 말씀 들으면서 많은 공감을 하셨을 것 같고 또 어려움에 처해 있는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많은 도움이 되셨을 그런 시간인 것 같습니다. 오늘 한판클라스. 용서하지 않을 권리의 저자이시죠. 김태경 교수님과 함께했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 김태경> 감사합니다.